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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든 우리도 한밑천 잡아 한번 잘 살아봅시다."나는 울컥 징그러운 생각이 났다. 그러곤 아아, 아아,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박완서 작가의 1974년작 단편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의 주인공은 중년 여성, 어렸을 적부터 부끄러움에 과민했던 그는 3번의 결혼을 겪었습니다. 첫 번째 결혼은 시골에서 이름난 부잣집 아들. 기지촌에서 미군과 동거하중국관련주
는 양공주가 되어 집안 생계를 책임지기를 기대하던 어머니의 속물성이 부끄러워 택한 도피처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처지라고는 상상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집밖으로 다른 여자도 뒀습니다. '애 하나 못낳는 주제에 그게 대수냐'던 적반하장 시댁을 뒤로하고 화자는 이혼을 택했습니다.
두 번째 남편은 신문에서 눈여겨보던주식투자요령
칼럼의 저자인 대학 교수였습니다. 돈이나 명예보다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듯한 글에 반해 결혼했지만, 직접 겪어본 그는 구제할 수 없이 비비꼬인 사람이자 '순엉터리'. 실은 누구보다 출세를 꿈꾸는 겁쟁이에 거짓말쟁이였습니다. 유능한 여편네를 얻었어야 제 출세길이 트였을 것이라는 푸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남편에게 화자는 다시 한번 이별WTI
을 고합니다.
세 번째 남편은 소문난 장사꾼, 사업가였습니다. 차라리 대놓고 돈 많이 벌기를 최대 목표로 삼는 그는 모종의 고매함을 가장하지라도 않았습니다. 사업 영역 확장을 통한 수익 최대화만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는 그는 누구보다도 노골적으로 물질적이고 속물적입니다. 그러다 오랜만에 동창 모임에 나가는 날 "고위 관직자 부인이 있을지골드몽게임
도 모르니 잘 알아보라"는 남편의 말은 그녀를 다시 한 번 멈춰세웁니다. 그 순간 밀려든 감정은 도입부의 한 단어로 요약됩니다. '징그럽다.' 그럼에도 3번의 결혼으로 피로할 대로 피로해진 그녀는 '그냥저냥 안정하고 싶다'고도 자주 생각합니다.
이 남편과도 헤어지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 속에서 문득 배우게 된 건 일본어입니다. 오랜만KG케미칼 주식
에 만난 친구 경희는 바로 남편이 고대하던 고위층 남편의 부인, 경희가 일본어를 배우면 추후 남편의 출세 뒷바라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 귀띔해 줬고 남편도 부추겼습니다. 그렇게 어영부영 일본어를 배우러 다니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듣게 된 한국인 안내원의 일본어 안내 멘트가 그녀를 귓가를 울립니다. 다소 궁핍한 행색의 일본인 관광객 무리를 이끌던 깔끔한 옷차림의 그녀는 일본어로 말합니다.
'아노ㅡ 미나사마, 고찌라 아따리까라 스리니 고주이 나사이마세." (저 여러분, 이 근처부터 소매치기에 주의하십시오.)
소매치기처럼 누가 들고 튀지는 않았지만 잃어가던 감각이 안내원의 경고 한 마디에 문득 꿈틀 고개를 내밀었던 것일까요? 물흐르듯 속물성에 잠식당해가던 그녀는 후반부에서나마 다시금 부끄러움을 깨우치며 끝납니다. 삶에서 정말로 조심해야 할 것, 배워야 할 것이 일본어가 아니라 무엇인지도.


◇ 부끄러움·징그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부끄러움이라는 윤리 감각이 촌스럽고 미련한 것처럼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법조 현장을 출입하던 시절, 법원 출석길에서 본 피고인들 중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각계 거물일수록 그러했습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법정에서 상세히 소명하겠다' 답하던 이들은 막상 재판장 안에서도 "억울하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기 바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이 모두 무죄이지는 않았습니다.

요며칠 TV 속 대선 후보들의 태도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지지 호소만큼이나 열과 성의를 다하는 건 상대에 대한 비방입니다. 상대의 과거를 끄집어내고, 흠결을 조롱하며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주요 전략처럼 작동합니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의 허물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정치공세’, ‘왜곡된 주장’이라는 말로 회피합니다. 반성의 언어는 상황이 유리할 때만 등장하기 마련, 타인의 과오에는 대법관처럼 엄정하면서 자신에게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합니다.
정치 전략상 부끄러움을 감추는 일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상수로 굳어진 정치판에서 부끄러움을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을까도 우려됩니다. 정치 무대 아닌 현실 생활에서도 고상한 척하는 말보다 솔직한 비루함을 드러낼 줄 아는 이들이 훨씬 강하다고, 아름답다고도 생각합니다. 다음 정권을 이끌어 가게 될 이들 마음속에는 부디 하늘을 우러러 여러 점의 부끄러움이 있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까진 아니더라도 정당한 의혹 제기나 비판에는 괴로워할 줄 알길, 시종일관 빳빳한 고개만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 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를 바라봅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아니, 굳이 깃발이 아니라도 좋다. 조그만 손수건이라도 팔랑팔랑 날려야 할 것 같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고. 아아,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모처럼 돌아온 내 부끄러움이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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