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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기술과 의료보장 제도의 발전에도 여전히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50여 년간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며 의술을 나눠온 요셉의원 고영초 원장을 만났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에는 도심의 화려함이 어설프게 가려놓은 쪽방촌 골목이 있다. 좁다란 골목길로 들어서면 초입에 요셉의료재단 요셉의원이 자리한다. 요셉의원은 병원 문턱을 넘기 어려운 소외된 이웃을 위해 1987년 고(故 )선우경식 원장이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처음 문을 열었고, 199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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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에서 무료 진료소인 요셉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고영초 원장.


고영초 원장(71)은 요셉의원의 초창기부터 함께해 올해로 38년째 의료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2023년에는 건국대학교 교수직에서 은퇴한 이후 이곳의 3대 원장으로 부임했다.(2대는 신소프트웨어관련주
완식 원장이다.) 대학생 때 시작한 그의 의료봉사 경력은 50년이 넘는다. 고 원장은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제36회 아산상 의료봉사상’을 수상했고, 2021년 ‘LG의인상’, 2014년 ‘제11회 장기려의도상’ 등 여러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 함께 수령한 상금은 그가 봉사해온 여러 병원에 나누어 기부했다.
“나의 지식과 재현대증권 주식
산, 시간을 남을 위해 조금은 나눠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제가 되기를 꿈꿨던 의사
고영초 원장은 어린 시절 신부가 되기를 꿈꿨다. 중고등학교 시절 예비 신학생을 기르는 소(小)신학교(현재는 운영되지 않는다)에 다니며 사제가 될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갔다. 그러다 고야마토5
등학교 3학년, 어린 마음에 경쟁심이 발동해 일반 고등학교로 전학했다.

“소신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미분·적분 같은 걸 배우질 않았어요. 그래서 일반고 전학 후 본 시험에서 빵점을 맞았어요. 재수도 각오했는데, 6개월 정도 열심히 공부하니 이과에서 2~3등 정도로 성적이 올랐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시험알라딘게임다운
을 보는데 저보다 공부 잘하던 친구는 떨어지고, 저는 붙었어요. 그 모든 게 저의 능력이 아니라 하늘이 길을 보여준 게 아닌가 싶었어요.”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골목에 있는 요셉의원. 병원 문턱을 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의대 본과 1학년에 진학하면서 가톨릭학생회에 가입해서 한 달에 몇 차례 관악구 난곡동 등으로 의료봉사를 나갔다. 학과 공부와 의료봉사를 병행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도움의 손길이 꼭 필요한 이들을 마주하는 동안 마음 깊은 곳에서 보람을 느꼈다.
“1973년 경기 양평 무의촌에 서울대병원 내과·외과 선생님들과 처음 진료를 나갔어요. 그때는 건강보험제도도 없고, 시골에서 서울대병원 의사를 볼 일이 없으니 하루에 600명 이상 주민이 몰려왔어요. 환자들 팔에 난 상처에 기생충이 기어 다니고, 사타구니에 혹을 떼고 보면 기생충 덩어리이고, 돼지고기 천충 애벌레가 뇌로 들어가서 간질에 걸린 환자도 많고 그랬어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돌본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어요.”
후일담이지만 이때 경험으로 그는 나중에 한국의 뇌 기생충 질환 관련 논문을 쓰고, 수술도 수십 차례 진행했다. 졸업 후에는 서울 금천구 시흥동 ‘전진상의원’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전진상의원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요청으로 국제가톨릭형제회가 설립한 무료 진료소였다. 해마다 김 추기경이 방문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봉사자들을 격려해준 일은 고 원장에게도 특별한 기억이다.
“첫 직장이 한림대 강남성심병원이었어요. 당시 전진상의원에 정신질환 환자들이 많이 왔는데, 제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라서 동료 정신과 의사에게 부탁했어요. 그분이 ‘내가 전진상의원에서 진료를 볼 테니, 당신은 요셉의원에서 신경외과 환자들을 봐달라’고 하셨죠. 그렇게 요셉의원과 인연을 맺었어요.”
고 원장은 전진상의원, 요셉의원,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라파엘클리닉’을 오가며 의료봉사를 이어왔다.
“천주교에 십일조라는 게 있어요. 이처럼 적어도 한 달에 사흘은 봉사하는 데 쓰겠다고 마음먹었죠.”


50년간 이어온 의료봉사의 길
현재 요셉의원에 상주하는 의사는 고영초 원장 한 명이지만, 130여 명의 의사가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약사·간호사 봉사자도 많고, 청소·식사·미용·목욕 봉사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는 600명에 이른다. 약품비, 재료비, 운영비 등을 지원하는 후원자도 월 5000여 명이나 된다.

“여긴 건물은 허름해도 종합병원이에요. 내과를 비롯해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피부과, 비뇨기과, 치과, 재활의학과, 정신과, 한방의학과까지 있어요. 환자들이 진료 일정표를 보고 필요한 과를 찾아오죠.”



고영초 원장이 일반인도 요셉의원 후원이나 자원봉사에 참가할 수 있다며 요셉의원 소식지를 소개한다.


이곳의 환자는 쪽방촌 주민뿐만 아니라 차상위계층, 노숙인, 행려자, 건강보험 자격이 정지된 사람 등이다.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나 난민 신청자도 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누구든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곳에 오는 분들은 질 좋은 식사를 못 하다 보니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질환이 일반인보다 훨씬 많아요. 또 불면증, 우울증, 알코올 의존증 등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분들도 과거보다 늘어났고요.”
하루에 진료받는 환자만 100명에 이른다. 거동이 어려워 병원을 찾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서 매주 서너 번 쪽방촌 골목으로 방문 진료도 나간다. 늘어나는 환자 수는 고 원장에게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고민이다.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같은 경우에는 건강보험이 없어서, 도움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어디까지 해줄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또 중증 환자의 경우 큰 병원과 연계하는데, 그쪽 사정도 있으니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죠. 틀니를 무료로 해준다고 하면 손에 다이아 반지, 금반지 끼고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누구를 도와야 할지, 대상자를 공정하게 선정하는 일이 가장 큰 숙제예요.”


나눔이 곧 사랑, 사랑이 곧 행복
어려움 속에서도 봉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의사의 가장 큰 기쁨은 무엇보다 환자의 쾌유이다. 고영초 원장 역시 자신이 치료한 환자들이 다시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기쁨과 행복을 느꼈다.

“전진상의원에서 오래 진료해온 환자 중에, 1991년에 뇌수술을 해준 사람이 있어요. 2006년쯤인가, 병원에 올 때가 됐는데 안 보이더라고요. 전화해도 연락이 안 되고. 간호사가 집을 알아서 가봤더니, 반 혼수상태로 쓰러져 있었어요. 제가 건대병원에 근무하던 때라 급히 구급차를 불러 보내고, 저도 따라가 밤늦게 응급수술을 했죠. 다행히 목숨을 건졌어요. 지금도 종종 얼굴을 보는데, 저랑 동갑인 사람이 저에게 ‘아버지’라고 불러요. 허허.”



다시 마주한 건강한 얼굴들 때문에 고 원장은 이곳으로 오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요셉의원에서 봉사할 계획일까?
“정해진 임기는 없어요. 1대 원장님이 21년 하셨고, 2대 원장님은 14년 하셨으니 저는 7년쯤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제가 임기를 5년만 하자고 했어요. 5년 하고 필요하면 또 연임하면 되고요.”
그는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시절 ‘사회 의료’ 과목을 새로 개설했다. 예비 의사들에게 의료봉사의 의미와 기쁨을 알려주려는 취지였다. 지금까지도 그 강의는 고 원장이 직접 진행하고 있다. 강의를 들은 몇 명이라도 그를 따라서 의료봉사에 나서준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간호사가 들어와 ‘환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쪽지를 건넨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다.
“쪽방촌 주민이나 노숙인들은 실직이나 큰 병, 이혼 등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저는 가능한 한 환자를 한 명 한 명 오래 보려고 하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면 따뜻한 정이 그리워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고영초 원장은 요셉의원을 찾는 이들이 다름 아닌 우리 이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가 환자들에게 되찾아주고 싶은 건 어쩌면 몸의 건강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삶의 의지, 다시 살아갈 희망 같은 것 아닐까. 타인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동안 그의 삶도 함께 바로 선다는 걸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글 길다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