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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K석유화학, 여수국가산단 가보니














지난 26일 정오 무렵,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하 ‘K석유화학’)의 최대 생산지인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약 3㎞ 떨어진 여수 무선지구 식당가는 평일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했다. 음식점마다 테이블 1~2개 정도만 간신히 손님을 채웠고, 손님 한 명 없이 텅 빈 곳도 적잖았다. 거리에서 만난 전북 익산 출신 여수산단 근로이코리아리츠 주식
자 이우석(41·가명)씨는 “고향 친구 넷이 같이 일했는데 다 떠나고 나만 남았다”며 “사람이 계속 떠나 없는데 상권이 남아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여수산단 근로자 수는 올해 2분기 1만6779명으로 전년 동기(2만1856명)보다 5077명 감소했다. 1년 만에 근로자 23.2%가 사라진 것이다. 이씨는 “나도 불안감에 이직을 전문가추천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후 성산공원에서 만난 여수산단 소재의 한 중소기업 사장 김모씨도 절박한 상황을 전했다. 국내 기업 수 곳에 납품하는 김씨는 “몇 년 사이 일감이 확 줄어서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근로자로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날 제약주
여수산단 입구로 향하는 도로에선 일반 차량만 간혹 보일 뿐, 물건을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인근 주유소 관계자는 “호황일 땐 대형 트럭이 줄지어 드나들었는데 요즘은 매우 드물게 다닌다”고 전했다. 여수산단 곳곳에 우뚝 선 공장 굴뚝도 자주 내뿜던 연기를 지금은 드물게 내뱉고 있다. 여수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여수산단 전체 매출은 2022년 1알라딘게임
01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87조8000억원으로 감소했다.
K석유화학이 죽어가고 있다. 여수산단 내 대기업 여천NCC가 최근 부도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지만, 시장 신뢰를 잃은 석유화학 업계의 채권 가격이 급락하는 등 상황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김지훈 보스턴컨설팅그룹코리아 대표파트너는 지난달 국회 포럼에서 “불황이 지속되면 3년 안에 JYPENT. 주식
국내 석유화학 업체의 절반가량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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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도 텅 빈 식당가, 물건 나르는 대형 트럭도 없어…“IMF 때보다 더 심각”









여천NCC 제2사업장에 위치한 제품저장시설 전경. [사진 여천NCC 홈페이지]







여천NCC는 지난 18일 이사회에서 대주주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로부터 각 1500억원씩 총 3000억원을 빌리기로 하면서 부도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만 8200억원에 달할 만큼 재무 상황이 악화한 데다,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 규모도 5100억원가량이라 결국 자생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케미칼도 2022년 이후 3년간 2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내 롯데그룹이 지난해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롯데케미칼 회사채 담보로 내놓을 만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국내 업계 영업이익률 0%대로 곤두박질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석유화학 제품 수출액은 2021년 551억 달러(약 76조9800억원)에서 지난해 480억 달러(약 67조700억원)로 줄어들었다. 수익성 악화는 한층 심각하다. 2021년 13.4%였던 석유화학 업계 영업이익률이 2023년엔 0.6%까지 쪼그라들었다. 수익성 악화로 위기에 내몰린 여천NCC는 과거 연간 조(兆) 단위 영업이익을 올리고, 임직원 평균연봉이 9000만원에 육박해 ‘석유화학 업계의 삼성전자’라 불릴 만큼 알짜 기업이었다. 회사 지분 50%씩을 보유한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라는 든든한 뒷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대주주가 지원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을 만큼 애물단지가 됐다. 한화솔루션은 지원을 우선시하는 반면, DL케미칼은 신중한 경영 진단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롯데케미칼도 최전성기인 2016년엔 LG화학의 업계 1위 자리를 빼앗을 정도로 우량했다. 여천NCC와 롯데케미칼은 에틸렌과 프로필렌, 나프타분해설비(NCC) 같은 범용 제품 비중이 높았다. 이는 호황기에 안정적으로 실적 극대화를 꾀할 수 있는 분야라 두 기업이 급속하게 사세를 불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과감한 투자를 집중했다. 문제는 기술력이 중요한 고부가가치 제품과 달리, 범용 제품일수록 후발주자인 중국이 한국을 역전하기도 수월하다는 점을 간과한 데 있었다. 중국 석유화학 업계는 2010년대 들어 경제 성장과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NCC 증설에 힘썼다.

이후 중국은 한국보다 월등한 생산능력과 저렴한 인건비에 따른 가격 경쟁력을 보유, 범용 제품 생산에서 우위를 점했다. 중국은 에틸렌을 2023년 5174만t 생산했는데 이는 2020년 자국 생산량보다 60%가량 많으면서 2023년 한국 에틸렌 생산능력(1280만t)의 약 4배에 달하는 숫자다. 그러면서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 여천NCC와 롯데케미칼 등 대기업을 포함한 K석유화학이 수출 시장에서 고전 중인 배경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석유화학 제품 수출에서 대(對)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47.8%에서 2023년 37.3%로 쪼그라들었다. 따라서 국내 NCC 가동률이 2021년 93.1%에서 2022년 81.7%, 2023년 74.0%로 떨어질 만큼 일감이 줄어든 상황이다. 조용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중국의 경기 침체로 석유화학 제품 가격 하락세가 심화하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중동의 가세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용했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는 산유국이라 석유화학 산업에서 원료 가격 경쟁력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자국의 산업 다각화를 위해 그사이 잇따라 석유화학 산업 진출과 고강도 투자에 나서면서 공급과잉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글로벌 저유가 여파까지 악영향을 미치면서 산자부는 지난달 석유화학 제품 수출단가가 전년 동기보다 12.6% 하락한 것으로 집계했다. 심각한 수익성 악화도 여전하다.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금호석유화학 등 국내 4대 석유화학사 합산 영업손실(석유화학 부문 기준)만 지난해 상반기 700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4762억원으로 1년 만에 7배가량 늘었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 악화를 더 이상 지켜만 봐선 안 된다고 판단, 지난 20일 K석유화학의 재도약을 목표로 10개 주요 석유화학사와 사업 재편에 대한 자율 협약을 맺었다. 최대 370만t 규모의 NCC 감축 등을 목표로 업계에 자율적인 사업 구조조정 계획을 마련, 연말까지 정부에 제출하도록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업계가 뼈를 깎는 각오로 사업 재편에 나서면 정부도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부 기업은 자율 구조조정 행보를 시작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최근 여수산단과 충남 대산공장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의사를 확인 중이다. 각 기업은 설비 매각이나 업체 간 통합 작업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K석유화학은 한국 전체 수출에서 7~8%대 비중을 차지할 만큼 중요하고, 쇠락 중인 지역경제 보호를 위해서도 지켜야 하는 분야”라며 “구체적인 사업 재편 방향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여천NCC, 과거 ‘석유화학계 삼성’ 별명 다만 기업의 자율성에 기대는 민간 주도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등 대외 악재 추가로 수요 둔화 지속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눈앞의 이해관계가 걸린 업계의 자구책은 실효적이기 힘들 것”이라며 “기업은 큰 틀에서 전략적으로 재편을 할 수 없고 산적한 규제도 많아 정부 주도로 착수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천NCC가 대주주 간 이견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이 지연된 점을 사례로 들었다. 하지만 정부는 당초 업계가 건의했던 ▶위기 산단에 대한 전기료 인하 ▶공정거래법의 유연한 적용(담합 예외 인정 등)을 통한 효율적 사업 재편 유도 등 지원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전문가 사이에선 일본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는 견해도 나온다. 한국보다 앞서 석유화학 산업이 위기에 처했던 일본은 2014년부터 정부 주도로 재편에 나선 바 있다. 이때 법 제정을 통해 기업의 통합 또는 분할과 설비 축소·효율화 등에 대한 세액 공제, 과세 이연, 펀드를 통한 보조금 지급, 전기료 인하 등 국가적 뒷받침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일본의 에틸렌 생산량은 2015년 743만t에서 2020년 682만t으로 줄었고 2028년 430만t 달성이 목표다. 또한 신에쓰화학이 신사업인 반도체 소재 사업의 매출 비중을 끌어올려 세계 1위 실리콘 웨이퍼 기업으로 재탄생하는 등, 석유화학 시장에서 중국과의 출혈경쟁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새 미래를 연 기업도 급증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의 마지막 골든타임인 만큼 정부가 규제 완화와 인센티브 제공 등 기업의 사업 재편에 필요한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며 “기업간 생산량 조절 협의에 걸림돌이 되는 공정거래법상 담합 조항부터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진 단국대 대학원 과학기술정책융합학과 교수는 “지금의 K석유화학 불황은 몇 년 간격으로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사이클에 있던 과거와 달리, 자체 경쟁력이 떨어져 더는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 도달한 것”이라며 “수출 경쟁력의 근본적인 회복을 위한 제품 고부가가치화 등에 정부가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면서 주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여수=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