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와 설난영의 결혼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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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ajfieo 작성일25-05-18 20:27 조회4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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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와 설난영의 결혼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두 사람은 천신만고 끝에 지난 81년 9월 서울 봉천동 봉천중앙교회 교육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둘은 청첩장을 돌리지도 않았고, 설난영 씨는 웨딩드레스조차 입지 않았다. 또한 이날 결혼식에 온 하객 중 상당수는 사복경찰이었다고 한다.#김문수부인#김문수와이프#김문수설난영#설난영프로필#김문수딸#김문수가족#김문수설난영결혼스토리이후 1978년 서울 구로공단 세진전자에서 여성 노조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성심여자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는 말도 있는데, 대학교 입학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김문수 후보와는 운동권 커플인 셈인데, 슬하에 1982년 생인 외동딸 김동주 씨가 있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고, 2016년 김문수가 대구 수성갑에 새누리당 후보로 나왔을 당시 남편, 자녀들과 함께 아버지 유세를 돕기도 했다.김문수 부인 설난영 씨는 1953년생으로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구로공단에서 노동자로 취업하며 1970년부터 노동운동가로 활동해왔다.김문수 후보와 설난영 씨가 대한민국 노동운동계의 전설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힘없고 약한 이들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 온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공직생활 중에도 청렴함과 정직함을 유지하려 했던 면도 존경한다.하지만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는 왜 변질이 되었고, 전광훈 같은 사이비 종교인이자 아스팔트 극우와 손을 잡았을까...그러다 제5공화국 초기 김 지사가 계엄당국에 쫓기고 있을 때 김문수가 설난영의 자취방에 피신하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고. 김문수는 부인에게 끌린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내 아내는 안 울 것 같아서…" 그때만 해도 정치판에 뛰어들 생각 따윈 하지 않고 노동운동가로서의 삶만 살고자 했던가 보다.김문수 대선후보의 부인 설난영 씨가 주목을 받고 있다. 김문수 후보와 함께 결혼 전부터 노동운동 현장에서 함께 싸워온 경력 때문일 텐데, 당시의 그들은 분명 순수하고 위대했다. 또한 김문수만큼 청렴하고 올곧은 정치인도 없다고 한다.당시 공안 당국에서는 두 사람이 ‘위장 결혼식’을 하며 시위를 벌인다고 의심을 했다. 그래서 결혼식장 근처에 전경버스를 다섯 대나 배치했다고 한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강성 노동자들끼리의 결합이었던 것.오랫동안 노동운동가로 활동해왔던 김문수와 설난영의 러브스토리도 유명하다. 두 사람은 70년대 말 노동운동을 하며 처음 만났다. 당시 김문수 후보는 드레스 미싱 공장을 시작으로 공장에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을 했고, 설난영 씨는 구로공단 세진전자 노조 분회장과 금속노조 남서울 지역지부 여성부장을 맡고 있었다. 그 시절 노동운동가들이 그랬듯, 두 사람은 연애 감정을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한다.설난영 씨는 결혼 후에도 한동안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김문수와 함께 구로공단, 청계피복, 주안공단 등 공단에서 어머니 노동자를 위한 탁아소를 운영했다. 이후에는 뜻이 맞는 지인들과 한국 여성노동자회를 결성하기도 했다.하지만 지금의 그는 분명 변질되었다. 과거 노동운동하던 시절의 김문수가 아니다. 비뚤어진 역사관, 노동계를 향한 핍박, 극우주의 사상 등등. 여전히 '강성'의 올곧은 심지는 살아있으나, 그게 옳지 못한 곳으로 향해 있다는 게 문제... 청렴함과 올곧음만으로는 대한민국을 책임질 수 없다.하지만 처음에 설난영 씨는 김문수 후보의 청혼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김문수가 남자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노동운동에 대한 신념이 워낙 강해서 결혼에 별 뜻이 없기도 했는데, 김문수가 공안 당국에 쫓기는 와중 40여 일간 행방불명 됐다가 돌아왔을 때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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